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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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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연대 1980, 1990, 2000, 2010

출생 1947.02.11 | 한국

활동유형 남성| 솔로 | 보컬,작사,작곡

활동장르 가요 > 트로트

데뷔 1966

아티스트 리뷰

  • 나훈아  (최홍기)
  • 나훈아는 소위 '트로트의 황제'라고 불리며 70, 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한국의 대표적 트로트 가수이다. 그를 단 몇 줄로 요약하여 설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의 히트곡만 해도 수십곡에 이를 정도이다. 또한 정규작을 제외하고 발표한 비정규 앨범이나 비공식 앨범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200장에 이르며, 취입곡의 수가 2600곡이 넘어선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매년 의욕적인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있는 그는 가히 장르를 넘어서 한국의 대표적인 남자 가수 중 한 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비음이 섞인 가는 톤과 허스키함을 두루 갖추었고 노래를 부르는 기교와 무대를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많지 않은 가수인데 특히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트로트의 붐을 일으킬 즈음 '트로트의 황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나훈아는 비공식적으로 1962년에 데뷔곡을 취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실제로 그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1969년 작품인 <천리길>을 통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이 곡을 그의 데뷔곡으로 알고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그의 트로트는 민요풍의 구성지고 서민적인 느낌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레코딩한 곡 중에 상당수는 우리의 전래 민요나 전통 가요였다. 1969년 이후 70년대까지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레코딩으로 불릴 만한 곡을 상당수 녹음했는데,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님 그리워> 등 여러 곡이 있다. 그는 노래 실력도 훌륭했으나 스스로 자신의 곡을 작곡하는 능력이 비범했다. 그가 녹음한 2,000곡 이상의 곡 중에 리메이크와 민요를 제외한 상당수의 오리지널 곡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80년대의 나훈아는 70년대만큼 기록적인 레코딩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적으로는 원숙해진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최고작 중 하나인 <잡초>, <울긴 왜 울어>, <대동강 편지>, <아마도 빗물이겠지>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로 그는 80년대 초반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 그는 일본을 비롯, 미국등을 순회하며 자신의 위상을 전 세계로 넓히는 데에 주력했다. 그는 70년대에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으나 80년대 이후 꾸준한 레코딩과 히트송을 내놓으며 성인취향의 가수로 변모, 사실상 남진보다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역시 그의 뛰어난 아티스트로서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까지도 꾸준함을 보여줬는데, <갈무리>, <건배> 등은 그의 실력이 이때까지도 녹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히트곡들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열정적인 레코딩 활동보다는 라이브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작업을 하고 있고 각종 베스트 앨범과 비디오 등을 출시하면서 40년이 넘은 가수 생활을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나훈아는 소위 '트로트의 황제'라고 불리며 70, 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한국의 대표적 트로트 가수이다. 그를 단 몇 줄로 요약하여 설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의 히트곡만 해도 수십곡에 이를 정도이다. 또한 정규작을 제외하고 발표한 비정규 앨범이나 비공식 앨범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200장에 이르며, 취입곡의 수가 2600곡이 넘어선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매년 의욕적인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있는 그는 가히 장르를 넘어서 한국의 대표적인 남자 가수 중 한 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비음이 섞인 가는 톤과 허스키함을 두루 갖추었고 노래를 부르는 기교와 무대를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많지 않은 가수인데 특히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트로트의 붐을 일으킬 즈음 '트로트의 황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나훈아는 비공식적으로 1962년에 데뷔곡을 취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실제로 그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1969년 작품인 <천리길>을 통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이 곡을 그의 데뷔곡으로 알고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그의 트로트는 민요풍의 구성지고 서민적인 느낌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레코딩한 곡 중에 상당수는 우리의 전래 민요나 전통 가요였다. 1969년 이후 70년대까지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레코딩으로 불릴 만한 곡을 상당수 녹음했는데,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님 그리워> 등 여러 곡이 있다. 그는 노래 실력도 훌륭했으나 스스로 자신의 곡을 작곡하는 능력이 비범했다. 그가 녹음한 2,000곡 이상의 곡 중에 리메이크와 민요를 제외한 상당수의 오리지널 곡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80년대의 나훈아는 70년대만큼 기록적인 레코딩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적으로는 원숙해진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최고작 중 하나인 <잡초>, <울긴 왜 울어>, <대동강 편지>, <아마도 빗물이겠지>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로 그는 80년대 초반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 그는 일본을 비롯, 미국등을 순회하며 자신의 위상을 전 세계로 넓히는 데에 주력했다. 그는 70년대에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으나 80년대 이후 꾸준한 레코딩과 히트송을 내놓으며 성인취향의 가수로 변모, 사실상 남진보다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역시 그의 뛰어난 아티스트로서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까지도 꾸준함을 보여줬는데, <갈무리>, <건배> 등은 그의 실력이 이때까지도 녹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히트곡들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열정적인 레코딩 활동보다는 라이브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작업을 하고 있고 각종 베스트 앨범과 비디오 등을 출시하면서 40년이 넘은 가수 생활을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콘서트를 주로 하면서 한국의 대표가수로 그 맥을 이어갔다. 나훈아는 남진과 달리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정을 잘 표현하는 민요풍으로 뒷끝을 좀 길게 늘어빼어 노래의 진맛을 나게 하여 흥을 돋우고, 시청자들에게 노래의 흥겨움에 푹 빠져들게 하는 풍류적 멋이 있는 가수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2008년 1월, 나훈아의 악성루머로 인해 나훈아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상을 발히는 문제가 발생한 후로 공식적인 활동은 잠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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