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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프로필

아티스트 프로필 이미지

활동연대 1970, 1980, 1990, 2000

결성 1977 |한국

활동유형 남성| 그룹

활동장르 가요 > 락 l 동요 > 동요

데뷔 1977 |아니 벌써 |아니 벌써

멤버 김창완, 김창익, 김창훈  활동이력 더보기

아티스트 리뷰

  • 산울림 

  • 김창완.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기까지는 동생의 영향이 컸다. 일반적으로 형이 동생에게 주는 것이 통례인데, 김창완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의 동생 김창훈은 중학교때 이미 코르위붕겐을 뗄 정도로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한다. 어머니는 그런 창훈을 위해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으면서 가족 모두가 어느 정도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창완은 음악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공부에만 전념하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잠사과에 입학했다.

    대학진학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그는 취미삼아 독학으로 음악을 익히기 시작한것이 인연이 되어 본격적으로 클래식 기타를 다뤘다.
    그후 2년 터울인 동생 창훈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식품공학과에 입학했다. 형 창완의 권유로 서울대 아마추어 그룹인 샌드 페블즈에 가담하여 베이스를 맡았으며, 이런 형들의 영향을 받아 막내인 창익은 고교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드럼을 쳤다.
    김창완이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는 레드 제플린이 인기를 얻던 무렵으로 김창완은 자연스럽게 레드 제플린을 많이 듣게 되었고 배드휭거, 텐 이어즈 애프터의 음악도 즐겨 들었다.

    이들밴드의 음악적 색조가 후일 산울림 음악의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뒤늦게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하였다. 2년 후인 1977년, 창훈이 속했던 그룹 샌드 페블즈가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그랑프리를 차지하자 이에 용기를 얻어 동생 창훈, 창익을 규합하여 그룹 산울림을 출범시켰다. 데뷔작 <아니 벌써!>는 그당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곡이다.
    그는 처음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치다가 1979년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다뤘다. 산울림은 그즈음 크게 인기를 누리던 3인 편성의 밴드인 그랜드 휭크 레일로드, 존 포커티가 빠져나간 이후 트리오로 개편한 컨트리 록 트리오 CCR의 사운드에서 강한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출범한 산울림은 데뷔하자마자 가요계에 무서운 ‘아이들’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화제의 인물로 대학축제마다 초빙되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록 그룹으로 부상했다.
    그런가운데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출반되었다. 2집 앨범은 그들의 인기를 계속 상승시켜 1978년 TBC가요대상의 중창부분 상을 타는 개가를 올렸다.
    한편 이들은 1978년과 1979년에 걸쳐 문화체육관에서 콘서트를 가졌는데 이때 공연을 관람하려는 팬들이 덕수궁 일대까지 장사잔을 쳤을 정도였다하니 그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로 위력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초등학생 팬들을 위한 동요집 「개구장이」를 출반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1979년 4월 창훈, 창익의 군입대로 인해 그룹의 활동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김창완은 동생들이 입대전에 취입해 둔 4집 「특급열차」, 5집 「한낮의 모래시계」, 6집 「조금만 기다려요」를 차례로 발표하면서 공백기간을 음반으로 착실히 메꿔 나갔다.
    그는 또 이 기간을 이용하여 다른 영역인 디스코자키로도 나섰다.
    TBC의 ‘7시의 데이트’와 KBS의 ‘일레븐 팝스’를 맡아 진행하면서 이 기회에 외국의 팝 음악을 많이 접하며 창작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1981년 7월 창훈, 창익 형제의 제대와 함께 다시 모이게 된 그룹 산울림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7집 앨범 「가지 마오」로 마침내 그해에 KBS가요대상 중창부문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또 「개구쟁이」에 이은 두번째 동요집 「산 할아버지」도 팬들의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옹달샘 콘서트’라는 무료공연과 자선음악회를 열어 확실하게 인기를 다져 나갔다. 1982년에도 산울림은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세번째 동요집 「운동회」와 8집 「새야 날아」를 발표했으며 음악시극 ‘한 여름밤의 축제’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1983년에 산울림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동요집 「E.T 스토리」와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를 낸 후 그룹이 실제적으로 해체하기에 이른다.
    창훈은 대학에서 전공을 살려 해태상사에, 창익은 대우 자동차에 각각 입사하여 음악 일선에서 떠났지만 레코딩 활동만은 계속하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낸 앨범이 10집 「너이 의미」였다. 그후 외톨이가 된 김창완은 레코드 기획에도 참여하여 대성음반을 거쳐 유니버살 레코드에도 근무한 바 있다.

    1985년 9월, 동숭동에 위치한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는 ‘꾸러기들의 굴뚝여행’이라는 표제아래 보기드문 공연이 펼쳐졌다. 이 공연은 같은 타이틀의 앨범을 PR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성된 것으로, 앨범은 물론 공연 기획까지의 전 과정을 김창완이 맡아 했다.
    15일 예정으로 열렸던 콘서트는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연일 관객이 쇄도하여 장소를 이대앞 민예소극장으로 옮겨 장장 100일간이라는 국내 가요사에서는 거의 볼수 없는 대대적인 앙코르 공연을 펼쳤다.

    1986년 동생들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혼자서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를 2년만에 출반했다. 여기서 지금껏 그가 추구해왔던 기타가 있는 수필과 독백체의 가사에 종래에 패턴과는 달리 뉴웨이브적인 분위기를 위한 리듬과 화성을 보다 강조한 음악으로 꾸몄는데 그가운데서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가 상승무드를 탔으며 그는 KBS-2TV의 ‘연예가 중계’에서 MC를 맡는 등 다사분망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991년 12집 「불안한 행복」을 마지막으로 산울림의 공식활동은 끝나고 김창완은 혼자서 DJ와 연기자 생활을 이어 나갔다.

활동이력

활동이력
그룹 멤버 발매앨범
초록색 대문 - 앨범
초록색 대문
1998.05.01
하늘색 꽃병 - 앨범
하늘색 꽃병
1998.05.01
꿈꾸는 공원 - 앨범
꿈꾸는 공원
1991.07.01
내 마음 - 앨범
내 마음
1978.11.01
특급열차 - 앨범
특급열차
1979.04.15
가지마오 - 앨범
가지마오
1981.08.01
조금만 기다려요 - 앨범
조금만 기다려요
1980.05.05
아니 벌써 - 앨범
아니 벌써
197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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